한국일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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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좁은 골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인터넷에 몰두했던 이들을 일컫던 ‘폐인’. 시간이 지나 ‘폐인’에게 ‘잉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잣대를 충족 시키지 못한 루저(loser)였지만, SNS와 만나면 ‘물 만난 고기’가 됐다. 현실에서의 패배가 훌륭한 창작 소재가 된 것이다. 이들이 내놓는 각종 드립(애드리브), 움짤(움직이는 사진) 등에선 '잉여력'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엔 만화가 김풍(36·본명 김정환)도 있었다.

김풍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10여년 전 만화 ‘폐인가족’으로 데뷔한 후 ‘폐인’ 열풍을 주도했다. 인터넷에 만화를 먼저 공개하는 ‘웹툰’ 시장을 개척했고, 만화 속 캐릭터들을 상품화해 돈도 제법 벌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비포장도로를 선호했다. 늘 새로운 꿈을 쫓았고, 때로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성공한 '본좌'와 ‘트잉여'의 경계서 항상 위태위태했다.

김풍은 SNS에서 넘치는 '잉여력'을 뽐냈다. 열심히 논 덕일까. 만화가로서 '감각'이 되살아났고, 지난해부터 포탈사이트 네이버웹툰에 ‘찌질의 역사’를 연재하고 있다. 트위터에 올린 요리비법이 계기가 돼 ‘자취요리 연구가’라는 직업으로 방송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처럼 잘 놀 수 있을까. 지난 11일 서울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김풍을 만나 ‘잉여답게 잘 노는 법’에 대해 물었다. 김풍다운 해법이 나왔다. “인생 살면서 실패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어? 내 흑역사 보고 같이 ‘찌질’해져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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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웹툰 ‘찌질의 역사’시즌2 연재가 시작됐다. A "이 웹툰은 20대 초반 남성 4명의 성장기다. 원래 제목은 ‘보편적인 수컷들의 역사’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연애의 흑역사, 다소 못나고 지질한 상황들을 담았다. 나이를 먹다 보면 부끄러웠던 과거 경험을 부정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에 옛 추억을 열심히 더듬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과거 얘기도 듣느라 바빴고. 하하."

Q 데뷔작 ‘폐인가족’은 신인가수가 데뷔하자마자 가요대상을 받은 격이었다. 그런데 대상 받고 난 이후 작품활동이 뜸했다. A "‘습작’처럼 그린 만화가 크게 성공했다. 캐릭터 사업이 잘 되면서 계속 딴 생각을 했다. 그 시절엔 만화를 그리면서도 만화가로 살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계속 생겼으니까. 문제는 도전을 해도 끈기가 없으니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던 거지."(김풍은 만화가 데뷔 이후에도 캐릭터 사업가, 연극배우, 영화기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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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첫 작품부터 큰 성공을 거둬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많이 없었을 것 같다. A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다. 빈곤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폐인가족’을 그렸을 땐 수입이 좋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도 맘껏 할 수 있었다. 연극도 하고 사업도 하고…. 다시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른 즈음에 회사를 그만 뒀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어디에서도 내 만화 기획안을 받아주지 않았다. 좀 이상했다. 그때부터 슬럼프가 왔다."

Q 어떻게 지냈나. A "돈이 아무리 많아도 4년 동안 논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나 스스로도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땐 아무것도 안하고 펑펑 놀았다. 당연히 소득은 없었지.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놀았다. 그러다가 2009년 여름,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140자로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었다. 내 글을 수 천명의 사람들이 리트윗 하는 게 신기했고. 그때 소위 ‘잉여’ 친구들을 만나 인맥을 쌓았다."

Q 놀면서 즐긴 트위터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당시 김풍은 ‘트위터 사용 설명기’를 그린 만화부터 노는 영상, 요리법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올렸다.)

A "트위터에 올려 놓은 요리법 '골뱅이 크림라면'☞ (동영상보기)을 보고 요리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되니깐 쉬운 요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만화 그리는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 같다. SNS는 그냥 노는 자리였는데, 일자리가 생겼으니 운이 좋았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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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SNS에서 성(性)에 관한 얘기도 솔직하고 유머 있게 풀어 놓는다. 최근엔 스스로를 ‘검스(검정스타킹)마니아’라고 얘기하는 ‘섹드립’이 인상 깊었다. A "하하, 검정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예뻐 보이니까 좋아하는 거지 별 뜻 없다. 이렇게 콘텐츠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드립’들은 의도하고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웃고 즐기려고 올리는 거다. 내가 좋아하고, 그 순간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함께 웃고 즐기는 공간이 SNS다."

Q SNS에 올린 게시물을 보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가령 ‘트윗일기’나 ‘생존왕 김풍’☞ (동영상보기)은 재미있는 콘텐츠였다. A "‘직업병’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데 익숙하니까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한다. 그런데 반응이 없으면 외롭다. 하하. 만화가도 연예인처럼 외로운 직업이다."

Q SNS에 게시물을 올리기 전에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A "트렌드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시도한다. 요즘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해서 뭔가 홍보하려고 하면 의도를 빠르게 파악한다. 의도 없이 무작정 놀아야 ‘얘 정말 놀고 있구나’라면서 사람들도 공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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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SNS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를 종종 밝힌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의 ‘공감 결여 능력’을 꼬집은 트윗이 인상 깊었다. A "하하, 점점 소시오패스만 살아남는 세상이 되고 있다. 남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는 거다."

Q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지 못한다는 얘기인가. A "예를 들면, 만화가가 늘어나면 당연히 좋다. 만화시장도 넓어질 거고. 하지만 실력 있는 만화가가 나오면 경계하게 된다. 경쟁이 과열될수록 후발 주자를 배려하는 아량이 없다. 나도 삼수를 하고, 몇 년 간 백수 생활도 했지만 늦게 걷는다고 해서 뒤처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걸으면서 힘을 비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앞선 사람들 중에선 “왜 내가 남을 도와줘야 하지?”라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뒷사람을 끌어 줄 여유도 없는 거지."

Q 만화에서도 다소 지질한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다.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우는 영웅담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은 늘 일상의 권력과 부딪힌다. A "‘찌질의 역사’에서는 잡아 먹고 잡아 먹히는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만들어진 체제 안에서 살아가려면, 때때로 살기 위해 강한 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예컨대 대학 때 동아리에서 군기반장을 도맡았던 잘나가는 선배에게 꼼짝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선배도 체제를 벗어나면 권력을 쥐지 못한다. 사회에선 원하는 꿈을 못 이루고 루저가 될 수도 있는 거지. 권력이란 게 참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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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칭 '트잉여' 시절에도 매사에 긍정적이더라. A "전혀 그렇지 않다. SNS에서는 한량처럼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일일이 얘기하지 않을 뿐이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 노력해야 결과물이 나온다. 가령 콘티를 뚝딱뚝딱 내놓는 만화가도 많은데, 나는 5~6일은 걸린다. 조바심 때문에 놀면서도 안절부절못한다. "

Q 그런데 어떻게 즐겁게 놀 수 있나. A "자존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내가 자존감을 갖도록 도와준 분은 장항준 영화감독이다. 어느 날, 항준이 형 집에 놀러 갔는데 영화 ‘왕의 남자’ 소품이 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형은 “쌀과 바꾸자”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래서 유기농 쌀을 사드리고 소품을 가져왔다. 당시 나는 회사를 관두고 돈이 없었지만, 그저 체면 때문에 돈을 펑펑 썼다. 그러나 형의 행동을 보고 자존감이 강하면 돈 없이 놀아도 역설적으로 ‘없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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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등이 되려는 욕심이 없어 보인다. A "1등이 어디 있나. 자존감만 있으면 된다. 나는 만화를 그리면서도 주인공보다 조연에 애착을 갖는다. 다양한 역할로 개성을 불어넣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인생도 누군가에게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땐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는 게 몸에 베어 있었지만, 지금은 내 스스로 나에게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Q 오랜 ‘잉여’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A "사실 내 예는 좋지 않다. 특수한 상황에 가깝지. 그래서 조심스럽다. 지금 내가 잉여 생활을 얘기하면서 웃을 수 있는 것도 재기했으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건 잉여적인 상황이 됐다면, 하루하루에 대한 느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돌아보면 당시의 상황이나 생각했던 것들이 문득 스친다. 그러다가 “아, 내가 그때는 이런 게 하고 싶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즐겁지 않은데, 즐겁게 보내라고 하는 건 폭력이다. 하하. 그저 하루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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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기획ㆍ글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사진 김주영기자 will@hk.co.kr
보조출연 및 속기 강병조 인턴기자
(한성대 영문학과4)
이영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법학과4)
디자인 한규민 szeehgm@hk.co.kr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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