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는 인터렉티브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거나 버튼을 누르면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터치 드레그를 아래로 내리면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시작하기

Logo image for print version http://www.hankookilbo.com
처음으로

은화는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에게 뽀뽀부터 하던 살가운 딸이었다. 하루에 수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교에 이름을 날릴 만큼 공부도 잘했다. 수학여행비가 너무 많이 들어 걱정이라던 철 든 딸은 배가 기울었다는 전화를 남긴 채 2년째 문자도, 전화도 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어머니를 걱정해 다윤이는 용돈을 달라거나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다. 그래도 아버지는 딸이 좋아하던 인기 아이돌 그룹인 ‘비스트’의 음반을 사라며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사고가 나던 날 사진관에서 찾을 예정이었던 네 가족의 사진은 딸이 담긴 마지막 가족사진이 돼버렸다.











처음으로

현철이는 음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팽목항에 아들의 기타를 가져다 놓고 기다렸다. 가수 신용재가 불러 2014년 5월 발표된 ‘사랑하는 그대여’ 노랫말 속에는 현철이의 마음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그대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많이 힘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처음으로

TV로 야구경기를 보고 있을 때면 아들 영인이는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했다. 부모님을 따라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아했던 아들 덕분에 어머니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가득하다. 어머니가 사준 축구화를 신고 뛰는 아들을 보고 싶었지만 영인이는 아직도 바다 속에 있다.











처음으로

단원고 체육 교사였던 고창석씨는 배 안으로 물이 가득 차오르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참된 스승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생존 학생들에 따르면 그는 물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주위에 있던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배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조끼를 입고 어서 탈출하라”는 한 마디가 학생들이 들은 고씨의 마지막 외침. 제자 여럿을 겨우 배 밖으로 내보낸 그는 정작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처음으로

단원고 사회 교사였던 양승진씨 역시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은 채 학생들을 도우려 배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창시절 씨름선수를 할 정도로 체격이 좋았던 그였지만 배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물살에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고가 났던 2014년은 승진씨가 교직에 몸담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학교 뒷산에 텃발을 가꾸고 사과나무, 천년초를 키워 꾸밀 정도로 단원고에 큰 애정을 가진 교사였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처음으로

제주로 이사해 감귤 농사를 지으며 새 삶을 꾸려보겠다는 꿈을 품고 세월호에 오른 재근씨 가족. 이들은 제주 땅을 채 밟아 보기도 전 사고를 당했다. 둘째 딸인 지연(당시 5)양은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지만, 권재근씨와 첫째 아들 혁규군은 2년 가까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있다. 재근씨의 아내 한모(29)씨는 사고 일주일 만인 2014년 4월 23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처음으로

제주 호텔 카지노에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후 짐을 옮기다 변을 당한 영숙씨는 사고가 나기 3년 전까지 20년을 동생 영호(47)씨와 함께 살았다. 영호씨에 따르면 매일 새벽 출근하는 그에게 누나는 갓 지은 쌀밥과 생선구이를 먹일 정도로 애틋했다. 영호씨는 밥만 보면 누나가 떠올라 먹을 수 없다며 사고 이후 20일이 넘는 기간을 링거로 버텼다. 영호씨는 혹시나 시신을 못 알아볼까 누나가 사고 당일 입은 보라색 점퍼의 치수와 모델명을 가까스로 알아냈다. 호텔 카지노에서 수년간 청소를 하다 올해 초 생애 첫 정규직이 돼 지인에게 선물 받은 값진 옷이었다.











처음으로



만든 사람들
신지후기자
양진하기자
디자인 백종호 디자이너
프로그래밍 김태식 프로그래머


ⓒ 2016 Hankookilbo.com









처음으로
계속 보기
숨김텍스트 보기
© 한국일보 2016

전체보기

스크롤인디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