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의 역습...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

7월 26일 북촌 중심 골목에서
녹음된 소리입니다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찰칵'하는 셔터음과 함께
외국인들의 탄성이 들린다

조용했던 북촌의 공기는
한순간에 깨졌다.
"주민이 삽니다”
“작게 대화해주세요”

관광객들의 눈에
안내문은 들어오지 않는다.
북촌 마을의 흔한 풍경이다.

북촌 마을을 거니는 반나절 동안 골목 담벼락과 집문에 붙은 '조용히 해달라'는 문구 수십개를 목격했다. 주말과 아침에도 밀려오는 관광객들의 소음 탓에 주민들에게 평온한 일상은 사치가 됐다

"'1박 2일 사태' 이후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됐어요."

“관광객이 많을 땐 종일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죠.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해요.”

북촌 주민들은 2010년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마을이 소개됐던 일을 '사태'라고 표현했다. 그들에겐 '악몽'이었다. 고즈넉했던 한옥마을이 느닷없이 관광지가 됐다. 한국 방문 외국인의 20%가 이곳을 들렀다. 중국인 등 단체관광객을 태운 45인승 관광버스가 쉴새 없이 몰려들었다.

고령의 토박이들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시달렸다. 북촌은 좁은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이어져 만들어진 동네다. 소음 전문가인 류훈재 박사(서울시립대)는 말했다. “골목 소음은 다른 곳으로 잘 빠져나가질 못해요. 담벼락 사이에서 반사되며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죠.”

스피커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8월 3일 오후 5:09
북촌 중심 골목

8월 3일 오후 6:05
북촌 다른 골목

7월 27일 오전 8:10
이정민씨 자택

8월 10일 오전 9:07
일반 가정집

사람사는 한옥마을로서 북촌은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마을 이기배 통장은 “복덕방에 집을 내놓은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중심골목인 북촌로11길 주변 한옥은 모두 16채. 이 중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은 5채뿐이다. 그나마 이중 3채는 집을 내놨거나 게스트하우스로 용도를 변경했다. 사실상 14채가 '빈집'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가면 북촌은 집주인 없는 한옥으로 가득찬 ‘민속촌’이 될지 모른다.

북촌의 중심 골목인 11길 주변. 몇 명 남지 않은 주민들은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한다. 관광객 소음 탓이다. “여행사들이 외국인 단체관광의 아침 첫 일정으로 북촌 방문을 넣어요. 아침 7시부터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죠.”(북촌 주민 A씨)

북촌의 소음은 실제 어느 정도일까. 지난 8월 3일 오후 5시, 북촌로11길에서 10분간 전문가용초정밀 소음계로 소리를 측정했다. 서울의 한낮기온이 30도까지 올라 관광객이 평소보다 적었다. 그럼에도 소음은 평균 59데시벨(dB), 순간 최고 소음은 72.6dB까지 나왔다.

시끌시끌한 백화점 내부 소음(60dB)과 비슷했다. 반대로 관광객이 잘 들어오지 않는 다른 골목은 같은 시간대 소음이 40~50dB 수준으로 측정됐다. 같은 북촌이라도 지자체에서 '꼭 가봐야할 골목'으로 홍보한 곳의 소음이 더 높았다.

소음은 아침과 저녁,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북촌에서는 관광객 발길이 뜸한 편인 가회동 뒷골목에 사는 이정민(가명)씨. 그는 "고요한 아침에 캐리어(여행용 가방)를 끌고 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있는데 돌바닥 긁는 소리가 집안까지 들린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이씨의 집에서 창문을 열고 캐리어 소음을 측정해봤다. 놀랍게도 최대 81dB까지 나왔다. 지하철 안에서 느끼는 소음 혹은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 기차가 지나갈 때 30cm 옆에서 들리는 소음 수준이다.

다른 거주지 소음은 어떨까. 오전 9시 소음을 재보니 최고 36dB이 찍혔다. 일상적으로 조용한 주택의 거실 소음이 40dB이므로 북촌 주민이 느끼는 소음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름 붙여진 강원도 양양(襄陽). 7~8년 전부터 이곳은 낮보다 밤이 더 밝고, 시끄럽다.

“여름 내 잠 한숨 못자게 시끄러워요. 심할 때는 새벽 4시까지도 쿵쿵거리고…” 폭염 특보가 내려졌던 7월의 한 금요일 저녁, 마을 토박이인 최동숙(86) 할머니는 마당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쿵, 쿵, 쿵. 저음의 클럽풍 음악이 노파의 귀를 때린다. 울타리 넘어 옆집을 건너 본다. 술과 아드레날린에 취한 듯한 젊은 남녀 30여명이 테이블을 빼곡히 채웠다.

“파출소도 다 알아. 신고해도 소용없어.”(현남면의 70대 주민) 현남면에서 지난 1년 7개월동안 접수된 소음신고는 모두 605건. 이 가운데 범칙금이 부과된 건 4건뿐이다. 상인 입장에서는 범칙금 3만원을 내더라도 스피커 불륨을 키워 호객행위하는 게 남는 장사다.

인구해변 앞 양리단길 주변은 금·토요일마다 ‘소음 지옥’이 된다. 양양의 해변이 ‘서핑 성지’로 떠오르자 젊은세대가 몰렸다. 돈냄새를 맡은 이들은 술집과 클럽이 운집한 거리를 만들었다. 문제는 야외 술집과 클럽과 인접한 곳에 여전히 고령의 원주민이 산다는 점이다.

이 마을 주민 중 거의 절반(44.3%)가 65세 가 넘은 노인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시골 노인들의 생활 패턴은 관광객이 밀려든 뒤 완전히 깨졌다.

8월 5일 오후 10:40
양리단길

노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나 될까. 토요일이었던 지난 7월 29일 오후 11시쯤 소음계를 들고 양리단길의 술집 사이에 낀 주택 앞에 섰다. 84dB까지 치솟았다. 거주민들은 밤새 지하철 안에서 보내는 듯한 소음을 견디고 있었다.

술집은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피서객들은 대형 스피커를 직접 들고 오기도 한다. 술에 취한 이들은 스피커를 마을 방향으로 돌려놓고 마음껏 볼륨을 높인다. 좁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튜닝 차량의 배기음과 백사장에서 불법적으로 터뜨리는 폭죽까지, 양양의 여름밤은 소음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소음, 건강을 저격하다

자료 :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팀,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한국환경연구원 등

소음전문가인 류훈재 서울시립대 도시빅데이터융합학과 연구교수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항공기나 군 사격장 소음 등은 배상을 해주는 사례가 있지만, 생활소음에 대해선 아직 규제가 충분히 정비되지 못했어요. 시민들이 소음에 느끼는 민감도는 높아졌는데 말이죠.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양양 술집의 우퍼 스피커가 심야에 뿜어대는 소리는 주민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저주파∙저음역대에 특화됐기 때문이다. 저주파음은 보통 500헤르츠 미만을 의미한다.

높낮이로 따지면 낮은 음을 뜻한다. 전자댄스음악(EDM) 소리 등은 전형적인 저주파음이다. 저주파음은 웅~ 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오래 노출되면 정신적 피해가 크다. 저주파음은 방음벽으로 저감하기도 쉽지 않다. 피해 가기 때문이다.

양리단길 소음 중 저주파대인 63Hz 소음을 초 단위로 분석해 보니 최대 104dB까지 치솟았다.

인구해변은 밤시간에 소음이 훨씬 잘 들린다. 소리가 낮보다 밤에 아래쪽으로 굴절하기에 더 직접적으로 전달이 된다. 시각적인 요소가 제약되면 청력이 민감해지기 때문에 더 시끄럽게 느낀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연합(EU) 등은 야간에 50~55dB 이상 소음에 장기 노출되면 심혈관질환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거리의 소음을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다.

소음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불안,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유발하고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청력은 말할 것도 없도 없다. 고막떨림 등 물리적 자극을 주어 달팽이관이 갈라지는 등의 손상을 입혀 청력을 감퇴시킨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간 소음노출이 1㏈ 증가할 때마다 심장 및 뇌혈관 질환 발병률이 0.17~0.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 자문 : 류훈재 서울시립대 도시빅데이터융합학과
연구교수, 소음진동기술사무소 NVT

엑셀런스랩 유대근, 박준석, 송주용 기자

멀티미디어부 왕태석 기자

디지털미디어부 박인혜, 박길우, 문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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