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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본
취업난? 잘 모르겠는데…
메이지대 국제일본학부 4학년인 카미야 아키노리(神谷 彰典ㆍ22)는 이미 8월에 일본의 원조 재벌 기업인 미쓰비시 제강에 합격했다. 15군데 정도 면접을 봤다는 카미야는 “취업난이라는 얘기는 잘 못 들어봤다”며 “주변에 취업이 어렵다는 친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14년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대졸 취업률은 96.7%다. 국내에도 관련 기사들이 줄줄이 보도됐다. 통계에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도쿄(東京)에서 만난 청년들 역시 “취업이 절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2011년에 일본에 건너온 한국인 유학생 이아인(24)씨는 지난해 3월 타쿠쇼쿠대 국제학부를 졸업하고 귀국 대신 일본 현지 취업을 선택했다. 이씨는 “한국 친구들 얘길 들어보면 ‘100군데 넣어도 안 된다’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얘기들 뿐”이라며 “일본에선 대기업만 고집하지 않으면 취업이 어렵진 않다”고 말했다. 또 “대학에서 함께 밴드 활동을 한 친구들은 수업도 자주 빠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데 오히려 남들보다 먼저 합격했다”며 “일본에선 저런 친구들도 취직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본엔 이력서에 학점을 아예 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스펙이 문제가 아니야
타쿠쇼쿠대 국제학부 4학년인 쇼우지 유리(庄司 結里ㆍ22)가 보여준 이력서는 독특했다. 웨딩 업체에 냈던 이력서는 손글씨로 작성돼 있었고, 심지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오려 붙이기까지 했다. 회사에서 요구한 내용은 ‘자신의 개성을 살려 웨딩 플랜을 짜보라’는 것. 쇼우지는 “친한 친구들의 특징을 살려 드레스와 메이크업, 결혼식 컨셉은 물론 신혼여행까지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취업의 당락을 좌우하는 건 개성과 창의력이다. 쇼우지는 “면접 질문 중에 ‘백지를 주고 자신을 표현해보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추상적인 과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캄캄했다”고 말했다. 도쿄로 면접을 보러 온 아오모리(青森)현 히로사키대 4학년 사카 아이코(坂 愛子ㆍ22)도 “상사 명령으로 화성에 가면 뭘 가지고 갈 건가, 라는 문제를 보고 당황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취업에 정도(正道)가 없다 보니, 학생들은 취직준비보다 대학 생활을 즐기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카미야와 쇼우지는 둘 다 농구부 활동을 오래 했다. 쇼우지는 7년간 농구부 활동을 하며 주장까지 역임했다. 카미야는 “평소엔 사회에 나가면 할 수 없는, 학생 때 즐길 수 있는 거면 뭐든 열심히 하려고 했다”며 “취업만을 위해 따로 노력한 건 없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일본 대학생들을 옭아매는 것은 ‘신졸일괄채용’ 시스템이다. 기업에서 대학교 3, 4학년을 채용하는 방식인데, 취업 재수가 극히 제한적인 것이 특징이다. 사카는 “신졸채용 때 취업하지 못하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어렵다”며 “이번에 꼭 취직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도 괜찮아, 블랙기업만 아니면…
하지만 일본 대학생들이 걱정하는 건 취업 자체가 아니라 취업 이후의 삶이었다. 일본에선 근로자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이라는 뜻의 ‘블랙기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2009년엔 ‘블랙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제 난 한계인지도 몰라’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영화 '블랙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제 난 한계인지도 몰라'
쇼우지는 취업 활동 중에 블랙기업에 대해 책과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데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한 호텔 회사에 합격한 뒤 제일 먼저 한 일도 회사 평판 정보 사이트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케부쿠로(池袋)에서 만난 나카 요스케(仲 陽介ㆍ26)가 니트(NEETㆍ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길을 선택한 것도 오래 일하고 적게 버는 친구들의 삶을 따라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속한 ‘니트 주식회사’라는 곳은 니트들이 모여 프로젝트 단위의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인데, 나카는 “회사에 속한 사람들 중엔 직장을 다니다가 월급이 적거나 야근이 잦은 노동 환경을 못 견디고 다음 직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랙기업이 아니라면, 비정규직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불평등한 처우나 사회적 차별은 없다고 했다. 이아인씨는 졸업 후 입사한 회사가 합병되면서 계약이 해지되는 바람에 새 직장을 찾고 있다. 이씨는 “어제 면접 본 곳은 계약직인데, 정규직과 연봉이나 인센티브에서 차이가 없다”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100만엔(약 963만원)을 지원해 주는 제도도 있다”고 말했다. 카미야와 쇼우지는 한국의 취업 상황을 듣고 “한국은 대기업에 취직해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고, 주변 시선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며 “일본에선 중소기업 들어 갔다고 인생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 주변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짠 듯이 똑 같은 얘길 했다.
혹시 일본 청년들이 저임금 노동의 타성에 젖어 한 말은 아닐까? 쇼우지가 취업한 회사는 연봉 250만엔(2,445만원ㆍ급료가 좋은 편은 아님), 이아인씨는 인센티브 포함 연봉 280만엔(2,738만원ㆍ직원이 9명인 작은 회사)이었다. 도쿄는 교통비와 집값이 비싸지만, 교통비는 대부분의 회사가 지원해주니 집값을 쉐어하우스로 절약한다면 서울보다 결코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도쿄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은 “이것저것 따져보면 중소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서울보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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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26살 남자의 정의(定義)
‘대기업과 중소기업 아니면 취준생’
“처음 학부 졸업할 땐 삼성이란 타이틀을 달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금은 아버지께 ‘저는 삼성 말고 연봉 얼마 주는 무슨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데, 삼성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론 힘든 얘기죠. 결국 어쩔 수 없이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해서 친구분들께 자랑하시라는 말씀 밖에 드릴 수가 없어요. 누가 만든 사회인지 알 순 없지만, 이게 한국의 현실인 것 같아요.”
서울의 유명 사립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강병우(27)씨는 “한국에서 26살 남자를 두 부류로 나누면 걔는 대기업, 쟤는 중소기업이다”라며 “취업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누구 아들은 어디 대기업 갔다더라’는 부모님의 우회적인 채근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2013년에 지방 국립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당시엔 일단 취업을 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전공을 살리기 보단 건축, 정유, 화학, 제약 등 20개 가까운 회사에 원서를 냈다. 합격한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면접 때 ‘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원에서 전공에 대해 더 깊게 공부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뭔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석사 졸업을 반년 앞둔 지금, 그의 목표는 바뀌었다. 표면적으로 대기업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맹목적으로 ‘삼성’만을 보고 달려갔던 2년 전과는 다르다. 강씨는 “학부 졸업 때 목표였던 삼성 취업은 내가 원했던 목표가 아니라 사회가, 부모가, 친구가 세운 목표였다”며 “이제는 내가 회사에 가서 어떤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석사 학위를 땄다고 회사를 골라갈 만큼 한국 취업시장이 녹록하진 않지만, 뚜렷한 목표가 생긴 덕에 그는 단단해졌다. “취업 시장에서 학사나 석사나 큰 차이는 없기에 불안함은 여전하다”면서도 “이젠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 스스로의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실패가 두렵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연구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강씨는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구실에 파묻혀 지낸다. 취업한 친구들과 통화할 때면 누가 더 오래 회사에, 연구실에 있었는지 경쟁하듯 서로의 힘든 삶을 토로한다. 이런 삶 속에서 희망을, 행복을 얘기할 수 있을까? 강씨는 “일과 돈에서 행복을 찾자면 100점 만점에 49점 밖에 못 준다”며 “오늘보다 내일 더 적게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놓진 않았다.
“저는 도피성 어학연수도 가보고, 도피성 창업도 해봤고, 졸업 유예도 했었고, 막상 대학원 진학도 도피성이 짙죠. 하지만 결국 도망갈 데는 없어요. ‘탈조선’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하면 누군가는 제게 ‘좋은 숟가락 타고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에요. 제가 깨달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두 가집니다.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지옥이라는 것, 그리고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는 거죠. 일에서 어떻게 재미를 찾냐구요? 그래서 끊임없이 삶의 목표를 되뇌며 살고 있습니다.”
“운동은 100등 해도 막막, 공부는 1만등 해도 활짝”
서울 사당동에 살고 있는 황재용(27)씨는 강병우씨와 동갑내기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달랐다. 황씨는 최종학력 고졸에 “알바로 담뱃값 정도 버는”실질적 백수다. 하지만 그도 한때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던 열혈 사회학도였다.
강원 정선군 사북읍이 고향인 황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를 결심했다. 슈퍼마켓과 문방구 자리엔 전당포가 들어섰고, 동네 골목은 모텔촌으로 바뀌었다. 이쯤 되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문을 연 강원랜드 카지노가 몰고 온 변화였다. 뜻밖에 아버지는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마라톤 선수 출신인 황씨 아버지는 ‘운동선수는 전국에서 100등 해도 살길이 막막하지만, 공부는 1만등 안에만 들어도 미래가 보장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공부하겠다니 말리진 않으셨다. 그렇게 서울에 온 게 2004년. 고향에서 신문 배달하며 모은 돈도 바닥나고,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의 지원도 이따금씩 끊기다 보니, 17살 어린 나이엔 감내하기 버거운 생활고가 닥쳐왔다. 폐기 직전의 편의점 삼각김밥 2개와 컵라면으로 하루를 때웠고, 고시원 총무가 방문을 두드릴 땐 쥐 죽은 듯 숨죽이기도 했다. 황씨는 “당시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곡절 끝에 수도권 4년제 대학교 사회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무력감의 트라우마는 대학교 4학년 때 다시 찾아왔다. 군 제대 후 집안 문제와 등록금 문제 등에 겹겹이 압박을 느낀 황씨는 “어느 날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리는 수 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는 제적이었다. 황씨는 자신의 ‘유리멘탈’ 때문이었음을 시인하면서도, “내가 ‘금수저’였다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격려를 받으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황씨도 ‘노답’인 ‘헬조선’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에 있어선 강병우씨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TED 강연을 인상 깊게 봤는데, ‘실패도 두렵지만 가장 나쁜 건 끝에 가서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었을 때’라며 ‘각자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게 뭔지 깊게 생각해보고 그 성공을 좇는 게 좋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만의 가치관을 세우고 나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면 행복은 따라오지 않겠냐”며 “의욕을 가질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새해엔 새로운 삶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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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늬들이 빈부격차를 알아?
“이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한 끼 식사에 1만위안(180만원)씩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이에요. 중국의 빈부격차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허베이(河北)성 출신인 추이멍디에(崔梦蝶ㆍ24)는 베이징(北京)의 한 고급 식당 한편에 조그맣게 자리한 찻집에서 일한다. 메뉴에 적힌 차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모금 양의 차 한잔 가격이 무려 128위안(2만3,000원), 네댓잔 분량인 한 주전자 가격은 480위안(8만7,000원)이었다. 평균적인 직장인 점심 식비가 30위안(5,400원)인 걸 감안하면 차 한 주전자가 열여섯끼 밥값인 셈이다.
한국의 금수저 흙수저 얘기를 들은 추이멍디에는 “중국에선 돈과 권력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이 일상 곳곳에 스며있다”며 “일부 일자리나 공무원직은 고위 관료나 부잣집 자녀들이 아니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얻지 못한다”고 했다. 한 국내 중국 관계자는 “중국 관영방송 CCTV는 공채 모집 없이 임원이나 고위직 자제만 꽌시(關係ㆍ연줄)를 통해 뽑는다”고 귀띔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중국의 대학 진학률은 2003년 15%에서 2012년 26.7%까지 매년 1% 이상 증가했다. 1980년대 이후 대학 수와 정원을 크게 늘렸고,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학부모들이 자녀의 교육 지원에 힘을 쏟으면서 지방에서도 대도시 대학에 유학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상황은 늘어나는 대학 졸업생들 모두에게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순 없었다. 이는 지방 유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추이멍디에는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자기가 배운 만큼의 대접도 받지 못한다”며 “심지어 그 중 상당수는 한 달에 5,000위안(90만원) 정도 버는 나보다 적은 월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이멍디에는 “그래도 중국엔 기회가 많고,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종학력이 중졸인 그녀가 고급 찻집의 매니저로 일하면서 대졸자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농민공이나 식당 종업원 등의 직업을 하찮게 여기지만, 반면에 나처럼 기술을 배우거나 공부 외의 방법으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길도 무수히 많다”며 “가게 손님들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존중해준다”고 했다. 이어 “차를 우리는 주전자를 공따오베이(公道杯)라고 한다”며 “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돈과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 공평하다는 뜻”이라고 웃어보였다. 지방 출신이 베이징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고 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 지 궁금했다. “물론 저 혼자 힘으로 베이징에 살려면 집값도 비싸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겠죠. 그래서 아마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 가장 큰 소망은, 10년 후든 20년 후든 제 찻집을 여는 거에요. 쉽진 않겠지만 꿈도 못 꿀 미래는 분명 아닐 거에요.”
취업난을 바라보는 ‘다르지만 같은’ 세가지 시선
“취직이 어려워 진 게 아니죠. 많은 청년들은 떠받들려 자란데다, 학력까지 높으니 낮은 데서부터 시작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거에요.” -궈징(郭静ㆍ21) 직업학교 졸업 후 여행사 근무 “취업률이 낮다고 취업이 어렵다는 뜻은 아니에요.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인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고학력자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기피하는 건 개인 선택의 문제인거죠.” - 장위링(张玉翎ㆍ19) 허베이민족사범대 학생 “경제 성장이 개인의 취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 취업은 졸업장으로 하는 거죠. 경제가 좋으나 나쁘나 베이징대나 칭화대 졸업생들은 취업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 리위레이(李昱蕾ㆍ26) 선양이공대 졸업 후 선봉금융그룹 근무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세 명의 청년들. 그들이 생각하는 취업난은, 비슷한 듯하지만 조금씩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취업 자체가 어려워 진 것은 아니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고, 중국의 취업난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청년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문제라는 점, 개인의 가치관 차이일 뿐이라는 점, 대학 간판이 취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중국의 취업난이 정책적ㆍ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왜 중국 청년들은 취업난을 스스로의 문제로 돌리는 걸까? 또 다른 학생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중앙민족대 대학원 서방경제학 전공인 차오린마오(曹林茂ㆍ26)는 “중국 정부는 산업구조 조정, 창업 격려, 한 가구 두 자녀 정책 등을 통해, 자원소모와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지금의 성장모델을 바꾸고 있다”며 “경제 성장률이 갑자기 추락하지 않도록 잘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국가에 대한 중국 청년들의 무한 신뢰와 자기동일시가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개인의 영역으로 바꿔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왜곡이, 중국 청년들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까진 일본 청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자책과 의욕 저하로 이어지기 보단 희망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위레이가 2012년 베이징의 한 잡지사에 취직해 받은 첫 월급은 1,800위안(33만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광고회사, O2O(Online to Offlineㆍ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이 결합된 유통방식)회사, 금융회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월급은 각각 5,000위안(91만원), 8,000위안(145만원), 1만2,000위안(218만원)으로 뛰었다. 불과 만 3년 만에 몸값을 6배 이상 불린 것이다. 취업난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희망찬 삶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어느 중국인이든 사회적 문제로 좌절하진 않을 것이다.”- 궈징
“희망은 자기만족에 달렸다. 난 욕심이 많지 않으니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 장위링
“나처럼 누구든 노력해서 내공을 쌓는다면 실패할 수 없다.” –리위레이
“실패하면 좀 어때” 긍정이 만든 청년 창업가
중국의 소수민족 인재들을 위한 국가중점대학인 중앙민족대는 베이징대, 칭화대, 인민대와 함께 베이징 하이디엔(海淀)구에 위치해 있다. 이 학교에서 최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창업대회가 열렸다. 학부생을 대상으론 2년마다 한번씩 열리지만 대학원생 대상으론 작년이 처음이었다. 총 31개 팀이 출전해 최종 6개 팀을 뽑아 기업과 매칭, 창업 기회를 주는 실전형 대회다. 이 대회 본선에 진출한 샤오띠(肖迪ㆍ25), 차오린마오(曹林茂ㆍ26), 팡이(方毅ㆍ25)를 만났다. 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샤오띠는 “1등 상금은 5,000위안(91만원)”이라며 “하지만 돈보다도 알리바바 등 큰 회사와 함께 내 사업 아이템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1등 욕심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들에게 이번이 첫 창업 대회는 아니다. 학부 때도 각자 대회에 참가했었다. 특히 팡이는 중국 무슬림들을 위한 결혼 중개 사이트 아이템으로 전국대회까지 출전한 경험이 있다. 차오린마오는 “창업에 관심을 가지는 중국 대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지난 3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밝힌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 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국가통계국의 2015년 3분기 경제지표별 현황 자료를 보면, 면세 혜택과 인큐베이터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중국의 창업 지원 정책이 실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상반기 신규등록기업은 전년 동기 대비 19.4%, 신규등록자금은 43%가 증가했다. 또 올 6월 창업인구가 전체 취업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월에 비해 0.11% 늘었다. 중국의 13억 인구를 감안할 때 전체 취업인구의 0.1%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특히 베이징대 시장연구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링허우(90后) 대졸자의 15.6%가 창업을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주링허우인 이들은 ‘주링허우를 테마로 한 복합 휴식공간’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사라져가는 어릴 적 추억들을 소환해 감성을 자극하면, 소비성향이 강한 주링허우는 분명 지갑을 열 거란 계산이다. 당연히 치밀한 시장조사 과정을 거친 후 내린 결론이다. 이들은 왜 자석처럼 창업에 이끌리는 걸까? 샤오띠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더 안정적일 진 몰라도 오랫동안 품어 온 꿈을 실현하지 않으면 평생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실패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잃을 것도 없다”며 “끝내 실패하더라도 재충전하고 더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중국의 많은 청년들이 취업난 탓에 정부의 정책 지원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창업으로 눈을 돌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만난 청년 창업가들은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을 만났다.
리핑장(李平章ㆍ24)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출신으로, 상하이(上海) 명문인 푸단대를 졸업했다. 대학 4학년 때 일본 화장품 회사인 DHC에서 경영 교육생(Management Trainee)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생 신분이었지만, 채용과 연계된 과정이었기 때문에 월급은 8,000위안(145만원)을 받았다. 지난해 주링허우 대졸 취업자들의 평균 월급이 2,687위안(49만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하지만 졸업 후 정규직 전환을 포기하고 베이징행을 택했다. 대학 시절 꿈꿔왔던 여행 회사 창업을 위해 기본기를 다져야겠다고 판단해 중국에서 가장 큰 온라인 여행사에 취직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사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무려 1만7,000위안(309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고액 연봉도 그의 발목을 잡지는 못했다. 꿈에 도전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엔 정말 아름다운 곳들이 많아요. 특히 제 고향인 쓰촨에서 티벳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베이징, 상하이, 홍콩에 대해선 잘 알지만 청두나 시안(西安) 같은 아주 재미있고 아름다운 도시들에 대해선 전혀 몰라요.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중국의 숨은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리핑장은 그렇게 지난해 9월 ‘하이차이나’라는 여행 회사를 차렸다. 뜻 맞는 동료 5명과 함께 한 집에 살며 밑그림을 현실화하고 있다.
리핑장은 자신의 궁극적인 꿈에 대해 “큰 돈을 벌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나아가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중국과 교류하고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말투와 행동엔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설령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중국 청년들, 다 이렇게 패기만만한 걸까? 리핑장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창업을 하는 것이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많은 청년들이 마윈처럼 하늘에 있는 별을 보고 달려가지만, 정작 발 밑의 함정은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는 ‘띠아오스(屌丝ㆍ중국판 루저. 집없고 차없고 여자친구도 없는 남자를 이르는 말로 2012년 중국 온라인 사이트 유행어 1위를 차지한 신조어)’란 용어가 유행한다”며 “지금 중국은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구절처럼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알리바바, 텅쉰, 바이두 등 중국 IT 기업의 약진이 많은 이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메이징징(梅京京ㆍ22)은 2014년 3년제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보조교사로 일했다. 월급은 3,000위안(54만원). 하지만 이제는 월수입 5만위안(910만원)의 사업가로 변신했다. 텅쉰이 출시한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을 통해 다이어트 제품을 판매하면서부터다. 메이징징은 “중국의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청년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미래는 절대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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